- 정상선언·각료성명 '패키지딜'로 다자무역 표현 절충점 찾아
![]() |
| 이재명 대통령이 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 정상들과 기념촬영 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WTO' 선언서 빼자는 美 요구에 '내년 의장국' 中이 한발 양보
[시사코리아저널=경북취재본부] 경주에 모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원들이 1일 내놓은 '경주 선언'은 타결 당일 아침까지 밤을 꼴딱 새우며 치열한 협상을 거듭한 끝에 탄생했다.
아태 지역 경제협력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APEC 정상선언은 각 회원이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안을 두고 입장을 내고 서로 조율을 거치기 때문에 협상 시한을 넘기기 일쑤다.
특히나 올해는 강경한 관세 정책을 신봉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복귀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한층 강해진 터라 예년보다 협상이 더욱 어려우리라는 외교가 분위기가 있었다.
트럼프 1기였던 2018년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당시 미중의 대립으로 창설 이래 처음으로 공동성명이 못 나온 선례가 있기도 했다.
이런 녹록지않은 협상 분위기를 고려한 외교부는 반드시 '경주 선언'을 도출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APEC 경험자를 포함한 엘리트 실무진을 따로 영입해 '최정예' 협상팀을 꾸렸다고 한다.
이들은 APEC 정상회의 주간이 시작되는 직전 주말부터 경주로 본거지를 옮겨 각 회원과 밀도 높은 협상에 들어갔다.
문구 협의 과정에서 미중 입장이 계속 평행선을 달린다는 이야기가 들리면서 자칫 성명 채택이 무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관세와 기술·자원을 무기로 무역 갈등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은 다자무역 표현에 대해 서로 강경한 입장을 내세웠고, 이런 의견 대립은 타결 전날인 지난달 31일까지도 계속됐다고 한다.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고 무역장벽을 세우는 트럼프 행정부는 평소 비판적 입장이었던 글로벌 무역시스템의 근간인 WTO 관련 문안을 이번 APEC 성명에서 빼기를 원했고, 중국은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한편 미국을 염두에 둔 일방주의와 보호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재집권하자마자 1기 때보다 강경한 입장을 밀어붙이는 탓에 그간 미국과 유사입장국으로서 노선을 같이했던 여러 서방국조차도 미국의 의견에 쉽게 동의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타결 전날 밤에 경주선언에서 WTO와 다자무역체제를 지지한다는 직접적 표현은 제외하되 이를 반영한 각료회의 성과를 평가한다는 우회로를 택하면서 극적으로 절충점을 찾았다.
![]()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부산 김해공군기지 의전실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는 경주 선언과 더 폭넓은 성과를 아우르는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AMM) 공동성명을 넘나들며 문안을 같이 놓고 조율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중국이 어느 정도 양보를 했기에 가능했던 측면도 있다.
통상 APEC 정상선언문에 들어갔던 WTO 표현이 이례적으로 빠진 만큼 다자주의 가치를 옹호하는 국가의 일원으로선 물론이고 경쟁 상대인 미국에 양보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중국이 한발 물러선 것은 이번에 협상이 결렬되면 내년 APEC 의장국으로서 더욱 쉽지 않은 분위기를 이어받게 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지난달 30일 열린 미중정상회담이 우호적 결과를 낸 것도 APEC 협상장에서 만난 미중 간 간극을 좁히는 윤활유 역할을 했을 수 있다.
케이시 메이스 미국 APEC 담당 고위관리는 지난달 31일 취재진과 만나 미중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긍정적"이라며 "그 영향이 APEC에서도 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미중간 이견이 봉합된 뒤에도 협상 대표들은 각자의 이해관계가 걸린 세세한 항목을 조정하느라 밤샘 협상을 이어가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의장국인 한국은 팽팽한 협상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각 회원 대표가 자리를 지키고 협상에 전념할 환경을 조성하려고 신경 쓴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회원 대표가 아침까지 자리를 지키며 협상을 벌인 것도 결국 공동성명을 도출해야 한다는 회원 간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각자 가진 권한 안에서 유연성을 발휘하고 어떻게든 결과를 내보려는 노력이 있었다"며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고 레드라인을 지켜가면서 결국 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AMM 공동성명 타결에 대해 "2025년의 성과와 APEC의 방향성에 대한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이 컨센서스로 합의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의장국의 리더십과 밤새 자리를 지켜준 회원 대표단의 공동 노력으로 결실을 맺었다"고 평가했다.
회원들이 무역·투자 중요성과 경제협력 심화에 공감한 대목은 글로벌 무역질서가 재편되는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자체로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경북취재본부 pro1288@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