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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민 /시사코리아저널 편집국장 |
'대~한민국 짝짝짝 짝 짝'
이 응원의 구호와 박수가 대한민국을 삼키던 2002년 한일 월드컵.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 이외에 다른 한 나라를 또 응원했다.
바로 '형제의 나라' 터키(지금의 튀르키예)였다.
터키는 2022년부터 국호를 튀르크인의 땅을 의미하는 '튀르키예'로 변경했다.
# 우리가 2002월드컵 때 터키를 응원했던 이유
사실 당시에 터키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칭하는 것과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언론을 통해 터키(튀르키예)가 6.25 한국전쟁때 미국,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많은 1만4,936명이라는 많은 병력을 파병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721명 전사에 2,147명이 부상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목숨을 걸고, 아니 목숨과 맞바꾸며 우리를 위해 싸운 형제국인 것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인들은 헤어졌던 형제를 다시 만난 듯이 그들을 대했다.
한국에서 열린 터키 경기에서 한국 축구팬들은 이 나라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했다.
터키와 경기를 치른 상대 국가 축구팬들이 우리의 일방적인 터키 응원에 섭섭함을 표시할 정도였다.
한국과 터키는 3 · 4위 전에서 맞붙었다.
당시 터키 국민들과 축구팬들은 한국 홈팀과의 경기에서 압도적인 응원전 열세가 경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경기 시작 직전 이런 우려는 감동과 충격으로 뒤바뀌었다.
관중석에서 양국의 초대형 국기가 함께 펼쳐진 것이다.
붉은 악마들의 손에는 태극기와 터키의 ‘월성기(月星旗)’가 함께 들려 있었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양국 선수들이 유니폼을 바꿔 입고, 국기를 바꿔 들고, 어깨동무하며 그라운드를 뛰었다.
따라서 이 경기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감동깊은 3 · 4위전이라는 평가가 붙기도 했다.
이때의 대형 월성기는 튀르키예의 앙카라국립박물관이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터키 현지의 반응도 뜨거웠다.
‘한국을 위해 다시 한번 피 흘릴 각오가 돼있다’, ‘(한국전쟁에서) 1,000명 가까운 용사를 잃었지만 5,000만의 한국인을 얻었다’라는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 역사적으로 보는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는 역사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튀르키예(당시 국가명 터키)가 ‘왜?’ 한국전쟁 때 그렇게 많은 병력을 신속하게 파견하고 또 전사했을까.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튀르크’라고 불렀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코리아(고구려 또는 고려)’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역사에서 ‘고구려’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돌궐(突厥)’이라는 나라가 나온다.
‘튀르크’는 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우리 한민족과 같은 우랄 알타이족으로 고구려 전성기엔 글안, 여진(숙신)과 마찬가지로 상당수의 돌궐인이 고구려의 기층(基層)민중에 속했다.
또한,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는데, 고구려가 멸망한 후(668년) 돌궐은 고구려의 유민을 많이 받아들이면서 우리 민족과 특별히 긴밀해졌다.
고구려 유민 일부는 몽골, 글안, 돌궐 등 타민족에 섞여 살다가 682년에 동돌궐이 올란바토르(현 몽고의 수도)에 돌궐 제2제국을 수립할 때 바로 여기에 참여한다.
참여한 유민의 숫자가 전체 돌궐 제2제국 인구의 절반인 20만명이 넘었다니 돌궐 제2제국은 고구려의 후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궐과 고구려는 계속 우호적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불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의 튀르키예(터키)에 자리잡은 그들이 고구려의 후예인 한국인들을 여전히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고 친밀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터키가 한때는 고구려의 기층민중이었고, 고구려 멸망 후에는 우리가 돌궐 제2제국의 기층민중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과 튀르키예는 역사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형제의 관계였던 것이다.
# 우리가 형제에게 진 빚 갚을 때
튀르키예를 삼킨 지진의 비극에 우리의 놀람은 크고, 슬픔은 깊다.
연일 기록을 세우고 있는 가늠할 수 없는 희생자 수가 이유이기도 하지만, ‘형제의 나라’라는 두 나라 사이를 이어주는 끈 때문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서 구호와 지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의 감정이 더욱 각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정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역대 최대 규모인 118명의 긴급구호대를 급파했고 소중한 인명을 구출하는 성과도 거뒀다.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 기업, 민간단체, 연예인과 운동선수, 일반 국민들까지 튀르키예를 돕는 데 나서고 있다.
실낱같은 희망 속에서도 구조활동은 계속되고, 모금 및 구호품 수집활동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국제 관계는 냉정하다.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다.
그렇지만, 한국전쟁 때 망설이지 않고 대규모 군대를 파병하고, 21년 전 두 나라의 초대형 국기가 함께 펼쳐지던 때처럼, 한국과 튀르키예의 형제애와 인류애는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형제에게 진 빚을 갚을 때다.
# 윤석열 정부 '통크게 나서라'
윤석열 대통령이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진 발생 직후, 신속하게 대응한 것은 지극히 잘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왕이면 통 큰 결단을 내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 역대 최대규모인 118명의 긴급구호대를 급파했다고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어느 나라도 생각하지 못했던 전 세계가 놀랄만한 대규모 구호대를 보냈다면 외국과 언론의 시선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은 보은(報恩)을 하는 '의리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각인될 수 있었을 것이다.
튀르키예 국민들의 감동은 더했을 것이다.
당장 경제적 수치로 환산되지는 않겠지만, 구호대 인력과 수반되는 비용보다 훨씬 높은 가성비가 창출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통큰 외교’가 가져올 수 있는 국제적인 또 하나의 유 · 무형의 성과 부분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역대 최대'라는 수식어만 붙인채 여기까지는 나가지 못했던 것 같다.
정부는 15일 오후 박진 외교부 장관 주재로 민관합동 해외긴급구호협의회를 열고 외교부 2명과 국립중앙의료원·한국국제의료보건재단·국방부로 구성된 KDRT 보건의료팀 10명,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5명, 민간긴급구호단체 4명 등 총 21명으로 꾸려진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 2진을 파견한다고 밝혔다.
가지 않은 것 보다는 낫겠지만, 구호대 21명이 생지옥같은 지진난국에 가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걱정이 든다. 그렇다고 정부의 구호대 2진 파견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옛말에 '안 주려면 말고, 주려면 깨벗고 주라'는 말이 있다.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의 절대절명의 사태와 아픔을 통 크게 돕는다고 이를 비난하거나 원망할 정치인들과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퇴직금으로 50억을 주는 나라(?)에서 말이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각종 경제적 한파에 아낄 것은 아끼고, 새로운 정책 구상은 당연하지만 생색내기식 피동적인 결정 및 정책보다 때로는 통큰 결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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