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울한 희생 넋 기리고 역사 교훈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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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코리아저널=정종민 선임기자] 박산골희생자유족회(회장 신도철)는 5일 신원면 박산합동묘역에서 합동제례를 봉행했다.
유족회는 매년 음력 7월 28일경 억울하게 희생당한 박산골 주민 517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제례를 지내오고 있다.
이날 제례에는 이성열 거창사건희생자유족회장, 김성남 거창사건사업소장, 김춘미 신원면장을 비롯한 기관·단체장과 유가족 50여 명이 참석해 엄숙하게 진행됐다.
박산골 민간인 학살 사건은 1951년 한국전쟁 당시 국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 군인들이 신원면 박산골 주민 1,000여 명을 이른바 통비분자라는 혐의로 신원국민학교에 감금한 뒤, 군․경찰․공무원 등의 가족을 제외한 517명을 학살한 비극이다.
이는 거창사건 셋째 날인 1951년 2월 11일 밤에 일어난 일로, 거창사건 전체 희생자 719명 중 가장 많은 희생을 낸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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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위령비 |
신도철 박산골희생자유족회장은 “영문도 모른 채 학살당한 박산골 주민들의 죽음에 마음이 먹먹해지고 다시는 과거의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 합동제례를 통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고 말했다.
이성열 거창사건희생자유족회장은 “제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거창사건 희생자에 대한 온전한 명예회복이 될 수 있게 보상법이 반드시 통과 될 수 있도록 여기 계신 분들을 포함해 유족회 전체가 다시 한번 힘을 모아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편, 신원면 박산합동묘역은 거창사건이 발생한 지 3년 후인 1954년 유골을 수습해 조성됐으나, 1961년 5·16 군사정권의 개장 명령으로 위령비가 훼손되는 아픔을 겪었으며 이후 1967년에서야 비로소 합동 묘소를 마련할 수 있었다.
박산묘역은 남자 합동묘 1기와 여자 합동묘 1기, 소아 비석 1기로 조성돼 있으며, 합동 묘소 앞에는 아직도 쓰러진 위령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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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민 기자 korea21c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