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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숙 칼럼] 2022 대선, 2030 청년을 생각한다

기사승인 2022.01.10  12: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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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숙 / 원광대학교 교수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말처럼 새해를 맞이하는 대한민국은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2021년 7월 2일 경제와 무역의 UN인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대한민국을 선진국 그룹으로 공식 변경하면서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조정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발표를 들은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를 입증하는 각종 지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타나고 있다.

사상 최고의 수출액, 반도체 1등 국가, 블룸버그 혁신지수 평가 1위, 코로나 시기의 OECD 경제 성장률, 코로나19 모범방역, OECD 디지털정부평가 1위, 세계 조선산업 경쟁력 1위 등 다른 나라가 부러워하는 대상이 되었다.

하와이대 명예교수인 세계적인 미래학자 짐 데이토는 서구의 모델은 이제 수명을 다한 것 같다며, 대한민국이 미래의 길을 찾아 세계에 보여달라고 주문할 정도이다. 

아직은 춥다

우리나라의 약진은 이제 경제와 IT를 넘어 문화영역으로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세계 젊은이들이 코로나19가 끝나면 가장 먼저 방문하고 싶은 나라가 K-Pop의 나라 한국이라는 통계조사가 최근에 발표되었다.
방탄소년단(BTS)의 한국어 노랫말을 세계인이 따라 부르게 되었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미나리의 윤여정에 대한 인기는 말할 것도 없고, 오징어 게임에 대한 열광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 넘었다.
어느새 문화강국이 되어 세계 문화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는가? 성공한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의 스토리를 들여다보면 소득 불평등과 계급 갈등에 기반한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반지하방에서 살아가는 백수들이 기생충처럼 을과 을끼리 치고박고 싸우는 <기생충>이나 더 나아가 빚에 눌려 자포자기에 몰린 비주류 인생들이 목숨을 담보로 러시안 룰렛 같은 생존게임을 벌이는 <오징어 게임>이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예술적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선진국은 GDP나 수출액 등 총량적 지표로 결정될 수 없다.
오일달러로 5만 달러를 능가하는 중동 산유국을 선진국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빈부격차와 복지, 의료 안전망이 엉망인 미국 같은 나라도 과연 선진국이 맞는 건지 의문이라는 학자도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19 시대의 천문학적 돈 풀기와 방역 우선주의 정책에 의해 전세계적으로 빈부격차와 교육, 문화, 사회적 격차가 심화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선진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부끄럽고 암담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다닥다닥 붙은 벌집 모양의 공간, 미로 같은 어둡고 좁은 입구를 지나야 지친 몸을 겨우 뉘일 공간 하나, 쪽방촌 사람들! 그리고 허리가 휘고 어깨가 굽은 노인들이 힘겹게 끌고 가는 손수레를 보라.
기숙사 휴게실에서 숨진 청소노동자들, 그리고 산업현장에서 각종 재해로 목숨을 잃은 청년들, 이 시대의 가장 밑바닥에서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고 살다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해법은 과연 선진국 시대에도 불가능한 것인가?

청년들에게 미래는?

청년들의 삶은 또 어떤가? 각자도생! 선진국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2030 청년들에게 부여된 절체절명의 명제이다.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전율하고 공감의 눈물을 흘리는 (세계의) 청년들로 인해 리얼리티를 탁월한 예술적 완성도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는 웃픈 상황이다.    

청년주택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대표이며, 현재 대선캠프 다이나마이트위원회 위원장인 권지웅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일자리 구하고 가정을 꾸리고 집을 사고, 노후를 준비하는 인생 설계를 해야 하는 시점에서 꼬여버린 청년들의 자화상을 담담하게 토로했다.

사랑하고, 결혼하여 살아가는, 너무나 평범한 일들이 이제 2030에게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부와 배경, 교육, 경험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가 팍팍한 이들에게 사회, 국가적 아젠다는 사치(?)일 것이다.

청년들을 더욱 못 견디게 하는 것은 비교 열위라고 해야 할까. 넘어설 수 없는 벽을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암담한 박탈감을 견디다 못해 적지 않은 청년들이 아파트 영끌에,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노라고 한다. 대선 후보의 경제 지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유튜브 채널 <삼프로>를 2주 만에 660만이 넘는 이들이 시청했고, 주식을 하는 청년들 거의가 봤을 거란 추측이다.
이 프로가 대한민국을 구했다고까지 열광하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투자는 오징어 게임 같은 극단적 생존확률까지는 아니지만 결국 제로섬(zero sum) 또는 일정한 마이너스섬(minus sum) 게임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점은 청년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돈 풀기가 끝나가는 2022년에 투자 기상도는 ‘흐림’을 넘어 폭풍우 같은 긴축 발작이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의 영혼은 불안하다.
청년들이 볼확실성에 내몰리는 것은 우리의 미래가 담보되지 않는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부의 청년정책 아젠다는 아직도 청년들이 체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2020년 8월 시행된 ‘청년기본법’에 의거하여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청년정책조정위원회’를 두고 있다.
청년을 위한 정책에서 청년에 의한 정책으로 가기 위해, 청년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들이 직접 청년 참여단, 온라인 청년 패널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을 청년의 날로 기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정책 시스템으로는 산적한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헤드쿼터로서 역할을 감당하기는 한참 멀어 보인다.

청년들도 이제 국가에서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점을 깨닫고 있으며 결국 개인의 노력만으로 미래가 보장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청년정책의 새틀짜기가 다음 정권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청년, 미래를 결정하는 캐스팅 보터

아니나 다를까. 바야흐로 대선정국에서 정치권은 2030 표심잡기에 바쁘다.
한 대선캠프 관계자는 MZ세대, 도무지 속내를 종잡기 어려워 지지율이 오르지 않아 후보에게 후드티라도 입혀볼까 온갖 고민을 많이 한다고 했다.

한 라디오 프로 진행자는 “기성정치인은 이 세대를 이해 못하고 있다”며 “2030을 정치무관심층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2030 보수남성층은 정치 고관여층이며 자기중심적 이익, 서열, 생활이 정치화됐다”고 해석했다.
늘 그렇듯 대선국면에서 2030세대는 ‘캐스팅 보터’가 되었다. 2030세대의 선택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선택이다.

청년정책에서 촉발된 ‘공정’ 논의는 어느덧 2022 대선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공정하지 않다는 청년 세대의 절규는 우리 국가공동체가 불공정과 불평등의 깊은 역사적, 집단적 수렁에 빠져 있다는 반증이다.

문제는 불공정 문제의 해소가 고도의 정치적 역량과 전략적 선택, 공동체의 합의를 이루어 내는 통합적 지도력 등 모든 역량을 동원해도 해결이 쉽지 않는 난제 중의 난제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청년들이 절망하는 부동산 양극화 문제만 보더라도 사회경제적 암종이라고 할 정도로 그 뿌리가 깊다.

<눈떠보니 선진국> 저자 박태웅은 우리나라의 불평등 해소가 경제적으로는 토지개혁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추미애 전 장관은 ‘양극화와 불평등, 2030세대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문제의 중심에 부동산 문제가 있다’며 ‘땀이 존중받던 사회가 투기로 대박을 노리는 지대추구 사회로 변질된 탓’이라고 주장했다.

부동산으로 인한 이익을 기성세대가 가져가는 사회구조로는 세대간 격차가 해소될 수 없다.
월급 받아 월세 내거나 대출금 갚으면 남는 것이 없는 셈이라니 주거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대’에 대한 근본적 접근을 달리하는 ‘시대적 대전환’이 하나의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물론 기득권과 기득권과 연계한 언론, 정치권의 엄청난 저항으로 자칫하면 세대간 한판 전쟁을 치러야 하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청년정책을 위한 대선 후보의 자질

2022 대선에서는 공정에 대한 감수성과 평등을 향한 진정성, 거기에 대해 풍부한 정책역량과 추진력, 세대간 통합을 위한 지도력을 골고루 갖춘 후보가 선출되기를 누구나 기대한다.
후보들도 어느 대선보다 2030 청년들을 위한 정책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청년들의 ‘깐부’를 자처하는 윤석열 후보는 공정사회, 공정한 법집행과 양성평등의 실현을 약속하며 청년원가주택, 청년도약계좌 등 계층이동 사다리 복원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취업 문제와 부동산 문제를 문재인 정부의 실패로 공격하면서 청년세대들에게 비호감이라는 보수 후보의 이미지를 넘어 한 때 20대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확보하기도 하였다.
최근 들어 여가부 폐지나 병사봉급 200만원 등 이대남을 겨냥한 공약으로 선회하면서 양성평등의 문제를 희화화하고 남녀간 갈라치기를 조장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역대 다른 보수 후보와 달리 청년들과의 일정한 접점을 연결하는데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재명 후보는 늘 애용하는 “억강부약 대동세상”이라는 용어처럼 공정에 대한 남다른 감수성이 있다.
지난해 말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실시간 대담을 하면서 실력주의에 기반한 경쟁을 통한 결과는 공정하다는 것이 착각이니, 성공한 집단은 “부채의식”을 가지고 공공선, 연대의식으로 가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청년 기본소득, 월세 공제, 선택적 모병제, 다양한 양성평등 및 아동청소년 정책 등을 통해 “청년 기회국가”를 만들겠다는 공약이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제시되었다.

필자는 지난 몇 차례의 대선을 거치면서 어느 때부턴가 유권자들에게 구애하기 위해 급조된 대선공약보다는 후보의 삶의 이력과 정치적 실천에서 우러나는 핵심적 가치를 통해 그의 진정성을 확인한다.
지나온 삶의 궤적은 앞으로 한걸음씩 나아갈 미래를 예측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온갖 정치적 박해에도 불구하고 ‘서민을 위한 정치’를 외치며 정치란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 하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득권 세력의 갖은 조롱을 받으면서도 ‘특권 없는 사회’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의 보릿고개를 겪는 시골 깡촌에서 태어나 민족적 영혼(?)을 팔면서까지 일제시기 군인으로 성공하듯이 모든 국민이 잘살아 보자는 신념은 개인적으로 진정성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이재명 후보는 작년 서울대를 방문했을 때 총장이나 교수가 아닌 청소노동자를 찾아가서 눈물을 훔쳤다.
양극화, 경쟁의 정글에 내몰려 살아남지 못하고 뒤쳐진 이들, 개인의 책임인지 사회의 책임인지 알기 어려운 이들, 더 이상 내몰릴 것도 없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지도자를 꿈꾼다는 말의 진정성이 반증되는 장면이다.

이재명 후보는 윤흥길 작가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읽으며 가난에 찌들어 살아온 권씨 본인과 감정이입이 되면서, 사시를 합격하고 삶의 토대가 바뀌어 기득권을 누리며 살 수 있었지만,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는 얘기도 한 적이 있다.
일종의 부채의식이다. 사실 누린 것에 대한 사회 환원을 통해 외면 받았던 성장기를 마주하고 치유하고 공공선으로까지 이르게 되는 삶의 과정일 것이다.

황석영 소설 <해질 무렵>에서 남자 주인공 박민우는 산동네 철거촌에서 자랐으나, 출세하여 삶의 자리가 바뀐 어느 시점부터는 그 동네에 방문하지 않게 되는 장면과 대비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새해 첫 칼럼을 쓰자니 사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한다는 희망의 근거와 함께 미래로의 확장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2030 청년세대를 떠올렸다.

그래서 이와 반대되는 통계, 예컨대 <세계불평등보고서 2022>에 따르면 우리나라 불평등 정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상위 10%와 하위 50% 부의 차이, 돈이 돈을 버는 속도와 노동해서 돈을 버는 속도의 차이, 불평등을 말해주는 피케티 지수,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에 따른 학습격차의 심화도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통계 등을 굳이 글머리에 제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새해 임인년도 기대해본다.
숫자 2가 200년 후인 2222년 외에는 제일 많은 해니 두 배로 좋은 성과를 기대해볼 만하지 않을까?

정치가 일상의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정치 만능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2022년 3월 대선에서 세계사적으로도 엄혹한 시기에 대한민국에 지도자만 잘 선출된다면, 종전과 세계평화, 경제 활력 등 주요 과제를 선도해갈 수 있는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향후 5년의 대한민국호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잘 선택한다면 우리는 청년세대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하나의 시대적 치트키(Cheat Key, Cheat Code)를 얻게 되는 셈이다.

3월 이후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공정의 문제를 풀어낼 지도자, 나아가 종전선언을 통해 대한민국 디스카운트를 벗어남으로써 통일비용보다 훨씬 많은 안보유지 비용이 총칼을 녹여 보습과 호미를 만들 듯 청년주택, 탄소 감축을 통한 기후정의, 디지털 시대의 대전환, 그리고 출발점이 다른 아동청소년을 위한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데 쓰일 수 있는 날이 앞당겨지기를 기대한다.

시사코리아저널 webmaster@koreaj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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