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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의 열린소리] 히트 펌프를 말하기 전에, 에너지 정책의 방향부터 묻고 싶다

기사승인 2025.12.22  16: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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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세협기계(주) CTO

최근 정부가 공기열 히트펌프를 재생에너지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보급 확대를 국정과제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히트펌프 산업에 몸담아온 사람으로서 이 흐름을 가볍게 바라볼 수는 없다. 기술에 대한 기대와 함께, 정책의 방향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교차하기 때문이다.

나는 국내에서 히트펌프를 직접 제조하는 기업을 이끌며, 총괄적인 기술을 책임지고 있다. 연구실보다 현장이 익숙했고, 정책 문서보다 고장 난 장비 앞에 서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이념이나 진영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지금의 정책 방향이 과연 지속가능한가”라는 질문만큼은 기술자의 입장에서 반드시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히트펌프는 분명 훌륭한 기술이다. 같은 에너지를 사용하더라도 훨씬 적은 전력으로 더 많은 열을 만들어낸다. 

효율만 놓고 보면, 현재 사용되는 난방 기술 가운데 가장 앞선 축에 속한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 기술을 ‘재생에너지’로 규정하는 순간부터 생긴다.

히트펌프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설비가 아니다. 전기를 사용해 공기나 물, 땅속에 이미 존재하는 열을 이동시키는 기술이다. 

전기가 깨끗하면 결과도 깨끗하지만, 전기가 화석연료에 기반하고 있다면 그 영향 역시 그대로 따라온다. 

결국 논쟁의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이 놓이는 전력 구조다.

우리나라의 전력 현실을 보면 고민은 더 깊어진다. 재생에너지 비중은 아직 높지 않고, 겨울철 피크 시간대의 전력 사정은 이미 빠듯한 상황이다. 

이런 조건에서 공기열 히트펌프가 대량으로 보급될 경우, 특정 시간대 전력 부하 집중과 계통 불안이 발생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전력 사용은 늘어나는데, 기대했던 탄소 감축 효과는 제한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정책은 조금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히트펌프는 재생에너지라기보다 고효율 전기 기반 열 이용 기술에 가깝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굳이 개념을 무리하게 확장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조건을 명확히 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히트펌프 보급을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관리 기술과 연계하는 방식이다. 낮에 생산한 전기를 저장하고, 전력 피크 시간대에는 계통 부담을 줄이는 구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실제로 유럽의 여러 나라가 이런 방식으로 히트펌프를 에너지 전환의 한 축으로 활용하고 있다. 히트펌프를 쓰되, 전력의 출처와 사용 시간까지 함께 관리하는 접근이다.

총괄 기술자이자 제조기업의 책임자로서 또 하나 짚고 싶은 부분은 산업 구조다. 현재 공기열 히트펌프 시장은 소수 대기업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이는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과 유통 구조의 문제에 가깝다.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정책이라면, 국내 제조 기반과 중소·중견 기술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급은 늘어도 산업은 남지 않는다.

나는 히트펌프 보급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보다 이 기술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이다. 

다만 기술은 방향을 잘 만나야 한다. 전력 구조와 산업 생태계, 지역 여건을 함께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결국 현장에서 벽에 부딪힌다.

국정 방향은 선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때 비로소 정책이 된다. 히트펌프가 진정한 미래 에너지의 한 축이 되기 위해서는, 이름을 바꾸는 일보다 구조를 바꾸는 일이 먼저다. 기술자는 그 점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현장에서 히트펌프를 만들어온 한 제조기업 대표이자 기술자의 열린 소리다.

시사코리아저널 webmaster@koreajn.co.kr

<저작권자 © 시사코리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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