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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현식 /지역정당 네트워크 정책위원 |
내가 사는 곳은 남한의 정중앙쯤에 위치한 인구 3만의 군(郡)이다.
이름난 관광지가 제법 있지만, 대부분 철을 많이 타는 곳이라 평상시에는 한산한, 말 그대로 시골이다.
공기 좋고, 물 맑고, 조용한, 아마도 식상할 것 같은 형용사들이 그럭저럭 들어맞는 곳이다.
얼핏 보면 유유자적, 안빈낙도 같은 말이 착착 달라붙을 것 같은 그런 고장이다. 잠깐 놀다 가는 사람들에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곳 역시 삶은 치열하다.
전원생활의 낭만이라는 건 도시인의 관점에서만 가능하다.
먹고 사는 게 도시라고 해서 편하고 풍성한 것은 아니겠지만, 산간벽지로 분류된 촌구석의 삶은 여러모로 버거운 게 많다.
인프라의 미흡은 물론,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기 어려운 수입 구조에, 젊은이는 없고 빈집만 늘어간다. 개교 100년 된 초등학교는 올해 문을 닫았다.
여기 더해 내가 사는 곳은 인접한 다른 고장보다 뭔가 2% 이상 부족하다.
대중교통이야 도시하고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데다가, 철도도 없고 시외버스도 잦지 않은 곳이다.
기름값도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비싸고, 장에 가도 물가가 싸지 않다.
하다못해 철철이 나오는 푸성귀 값조차 인근 지역보다 비싸고, 종류도 별로 없고, 게다가 그다지 좋지도 않다. 괜히 인구소멸 위험지역이 되는 게 아니다.
# 허공으로 사라지는 민의
뭔가 조금만 개선하면 될 듯한 게 널려 있는데, 가만 보면 그게 잘 안된다.
주민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데, 그런 말들은 허공에 흩어질 뿐 어떤 결과물이 되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한 지역의 변화라는 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일은 아닌 게 분명하다.
때론 시간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 기한이 되어야 뭔가 달라진 게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 달라지는 거라곤 어느 날 축사가 더 늘어나고, 또 어느 날 캠핑장이 생겨나는 일이 거의 다다.
소위 ‘민의’가 어디선가 막혀 있다.
내가 사는 마을엔 지난해에 대규모 축사가 신축되었는데, 동네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이미 축사가 많이 있는 마을인데다가 축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다들 마을 사람들이어서 그동안은 별 탈이 없었다.
새로 만들어지는 축사 역시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규모가 보통이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게다가 축사의 위치가 도로에 인접해 있는데 축대조차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안전상의 위험도 있었다.
마을 주민들 일부가 문제를 제기했고, 급기야 군청에 민원을 넣기까지 했으나 공사는 강행되었다.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대대손손 이웃하며 살던 사람들끼리 얼굴 붉히는 게 좋지 않아 겉으로는 말을 않지만, 이런 일이 어디 이 동네에서만 벌어지는 일이겠는가.
주민들의 생각과 말이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빨간색과 파란색만 있는 마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변화를 주도해야 할 지역 정치의 사멸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자치단체와 기초의회가 특정 정당에 독식되어 있는 현실은 지역의 정치가 사멸했음을 보여주는 극명한 상징이다.
현직 군수는 국민의힘 소속이고, 군의회 의원은 무소속 1명, 더불어민주당 1명, 그 외 나머지 5명은 국민의힘 소속이다.
그렇다면 이전에는 어땠을까?
직전 군의회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5명, 국민의힘 3명이었다.
군수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소속이었다.
현재와 비교할 때 야당 중심의 군의회가 여당 출신의 군수를 견제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어차피 지역정치에서 보수양당은 이해관계에 별다른 차별성을 갖지 않는다.
주민들은 지역의 단체장이나 기초의회 의원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일이 허다하다.
그나마 마을 회관에서 소일하는 어르신들은 누가 뉘 집 자식이며,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디서 뭘 해서 먹고 살다가 군수가 되고 의원이 되었는지를 가끔 이야기한다.
이건 정치 고관여층이 아니면 아예 관심이 없는 서울의 유권자들과는 좀 다른 면이 있긴 하다.
명절이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군의원들이 ‘한 바퀴’를 돈다.
인사도 하고 밥도 먹으면서 어르신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건네는 걸 듣기도 한다.
하지만 내 삶이 이들로 인해 변화하는 게 있음을 실감하지 못한다.
색깔만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다를 뿐, 다양한 민의를 수용하고 반영하려는 정치적 실천이 결여된 보수양당 독식 구조의 한계다.
# 보수양당의 기득권 담합
제9회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도, 보수 양당의 공직 독식의 욕망은 멈출 줄을 모른다.
한쪽에서는 내란세력 척결을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윤어게인’으로 떠들썩하지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 몸처럼 움직인다.
선거가 코앞에 닥쳐서야 이루어진 선거법과 정당법 개정을 보면 과연 'K-민주주의'라는 말이 적절한지 의문이 들 정도다.
중대선거구제 확대는 기껏해야 시범실시 특례 지역 몇 곳을 지정하는 선에 머물렀다.
그것조차 복수공천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보수 양당의 나눠 먹기 구조만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광역 시도의회 비례대표 비율은 현행 10%에서 고작 14%로 확대하는 것에 그쳤다.
그마저도 정작 비례대표의원 할당의 저지선인 유효투표총수의 5% 규정은 건드리지 않음으로써 군소정당의 진입은 여전히 봉쇄해버렸다.
정당법을 개정하면서 은근슬쩍 지구당은 부활시켰음에도 정작 지역정당에 대해선 일체 함구로 일관했다.
국회를 장악한 보수양당은 말로는 지방자치를 이야기하고 지역소멸을 걱정한다.
그러면서도 지역정치를 살리는 방안에는 눈을 감고 귀를 닫는다.
지역정치의 활성화가 지금의 지역 위기를 해소할 가장 실질적이고 확실한 대안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시카고 대학 민주주의 연구소의 소장인 수전 C. 스토크스 교수는 민주주의의 급격한 붕괴를 유발하는 쿠데타와는 달리, 그보다 느린 과정을 거쳐 민주주의를 쇠락시키는 현상을 “민주주의의 침식”이라고 명명했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침식은 장기간에 걸친 불평등의 누적과 격차의 양극화, 이에 대응하는 우파종족민주주의와 좌파포퓰리즘의 격쟁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침식은 결국 독재로 이어진다(스토크스, “백슬라이더”)
격차의 양극화는 정치적 양극화로 이어진다. 사회적 통합이라는 정치의 고유한 소명이 소거된 자리에는 절멸되어야 할 적대만이 이글거린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정치세력은 양극화를 해소하기보다는 이에 기대거나 오히려 조장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민주주의를 납치한다. 정치적 다양성을 거부하는 한국 보수양당의 현주소이다.
# 희망은 있는가?
다가오는 제9회 지방선거 전에 보수양당이 개과천선해서 제도를 정비하고 다양한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을 기대하기엔 이미 늦었다.
늦은 정도가 아니라 지금까지 보수양당의 행보는 절망감을 안겨줄 뿐이다.
지방선거 이후에는 달라질까? 난망한 일이다.
이 대목에서 물어볼 수밖에 없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안전한가?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이 대문자 K-민주주의 작명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특징으로 '집단 지성에 의한 평화적이고 아름다운 직접성'을 거론했다(2025.12.3. 외신기자회견).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을 탄핵한 한국 시민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과 실천력은 상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이 곧 자랑스러운 'K-민주주의'의 골간으로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있다.
광장에서 분출한 열망은 제도로 귀결될 때 비로소 공적인 규범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공적 규범은 탄핵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정권들을 필연적으로 야기했던 구체제를 대체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구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규범의 탄생은 고사하고, 기존의 체제마저 더욱 기형적으로 왜곡하면서까지 기득권에 집착하는 보수 양당의 작태를 보고 있다.
적어도 선거법과 정당법에 있어서만큼은 K-민주주의라는 기름진 말이 가당치 않은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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