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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돈 /부천마을대학 이사, 새롬교회 은퇴목사 |
최근 세 권의 책을 보게 되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김수영 교수의《필연적 혼자의 시대》, 스스로랩 대표 송인주 박사의 《혼자 죽는 사회》,서울대 아동가족학과 진미정 교수의 《가족이라는 사치》등이다.
세 권의 책은 서로 다른 분야의 저자들이지만, 동일한 사회적 단면을 진단한다.
혼자 사는 삶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산물이며, 돌봄은 이제 한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마을,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공동의 과제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1인 가구가 1,000만 세대를 돌파하며 전체 가구 형태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미증유의 구조적 대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혼자 사는 삶은 더 이상 개인의 연애나 결혼 실패, 혹은 일시적인 라이프스타일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초래한 사회구조적 필연이다.
사회학자 김수영의 실증 연구는 1인 가구의 급증이 개별 주체의 자율적 결단이 아닌 불안정 고용, 소득 불평등, 주거 비용의 급등이라는 사회구조적 강제에 의해 규정됨을 증언한다.
이러한 사회적 고립의 최극단에서 발생하는 고독사 문제는 송인주의 고독사 사례 분석을 통해 단순한 통계치를 넘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중장년 남성, 복지 수급 탈락 여성, 팬데믹으로 고립된 노인, 보호시설을 퇴소한 청년 등 사회적 안전망의 미비가 초래한 구조적 파국임이 드러난다.
진미정의 연구가 지적하듯 연애, 결혼, 출산, 양육, 돌봄으로 이어지던 전통적 가족 제도의 유지는 이제 일부 계층만 누릴 수 있는 특권, 즉 사치가 되었다.
# 혼자 사는 시대의 위기, 왜 '사회적 자궁'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이러한 “필연적 홀로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건 무엇일까.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가 던진 '사회적자궁(Social Womb)'이라는 화두가 떠오른다.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이 제시한 '사회적 자궁(Social Womb)' 개념은 생물학적 자궁이 아기를 잉태하고 양육하듯, 인간이 존엄성을 유지하며 상호 의존할 수 있도록 환대와 보호, 돌봄을 제공하는 사회적·인류학적 생명그물망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적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개인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파편화된다.
사회적 자궁의 복원은 이기적 무한경쟁을 자율과 공생, 우정과 환대의 관계망으로 대체하는 핵심 기제다.
엄마의 자궁이 아기를 안전하게 키우듯, 사회가 사람을 환대하고 보호하고 돌보는 생명의 그물망을 회복하자는 말이고 오늘날에 그 사회적 자궁의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할 곳이 바로 마을이라는 것이다.
지금 더 이상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가 된 핵심이 바로 마을이라는 생태계와 생명망과 사회적 자궁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옛 마을의 품앗이와 두레, 관혼상제, 공동육아와 노인간병이 바로 그 자궁이었다.
그런데 약탈적 자본주의와 고도화된 도시화가 사적 소유권과 무한경쟁을 부추기며 그자궁을 통째로 걷어내버렸다.
그결과 우리는 독박육아와 독박노후, 그리고 세계 최고수준의 자살률과 고독사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 예수의 갈릴리 마을운동은 사회적 자궁의 역사적 원형
흥미로운 것은 이 사회적 자궁의 역사적 원형을 예수의 갈릴리 마을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갈릴리 지역의 마을 예수는 당대 낡은 제도와 율법 중심의 회당을 떠나 사람들의 일상공간인 마을과 집앞 마당으로 나갔다.
베드로 장모의 집 앞마당은 병들고 소외된 이들이 환영받는 첫 번째 사회적 자궁이 되었고, 죄인과 세리와 함께 한 밥상은 사회적 경계를 허무는 연대의 자리였다.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를 만난 뒤 재산의 절반을 나누고 빼앗은 것을 네 배로 갚겠다고 한 일화는,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사회연대경제'의 원형으로 읽힌다.
여기서 필연적 홀로의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장면은 바로 예수가 '사회적 자궁' 자체를 고쳤다는 점이다.
12년 동안 피를 흘리던 하혈병 걸린 여인이나 12살 난 유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사건은, 당시 사회가 외면했던 사회적 자궁을 다시 살리고 생명을 살린 생명 사건과 운동의 전형인 것이다.
예수는 '다른 마을들로 가자'고 하면서, 이런 생명 돌봄 운동이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생명을 살리는 '생명망'으로 퍼져나가야 함을 보여주었다.
이는 돌봄이 혈연을 넘어 마을 공동체 전체의 몫이 되었을 때, 생명이 살고 마을과 사회 전체가 살아난다는 오래된 교훈인 것이다.
이 원형을 오늘의 언어로 옮기면, '마을 마당'의 복원이다.
우리 전통 집에서 마당은 집과 길사이의 중간 공간이었다.
이웃이 부담없이 드나들며 안부를 묻고, 아이를 함께보고, 상을 같이 차리던 곳.
현대도시에서 이 중간공간이 사라진 것이 곧 고립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개인의 집과 공공의 기관 사이에 '동네사랑방'을 다시 만드는 일이다.
# 새로운 통합 돌봄 마을마당 패러다임: '3탈 3연대'와 '마을마당 생태계'의 재구성
기존 돌봄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적 자궁을 현대 도시 공간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3탈(탈가족, 탈시설, 탈상품이라는 낡은 돌봄 생태계와의 결별)'과 '3연대(사회복지적,사회경제적, 문화예술적 새로운 돌봄 연대 관계망 형성)'가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우선 통합돌봄시대의 돌봄은 모든 돌봄을 여성에게 독박 씌우고, 저임금화하려는 가부장적 돌봄에서 탈가족화 하여 사회가 돌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노인들과 장애인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을 시설에 격리하려는 시설 돌봄의 굴레에서 탈시설화하여, 살던 마을이 돌봄의 중심에 서야한다.
세째로는 돌봄의 명목으로 모든 돌봄의 대상자를 환자화하고, 상품화하려는 거대 병원이나 제약회사의 상품화 의도를 마을 주민들 스스로가 돌봄의 주체가 돼야 한다.
마을마다 사회적 연대적 돌봄 생태계와 생명망을 만들어 돌봄의 탈상품화를 막아내는 3탈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자궁적 복지연대, 사회경제적 연대, 문화예술적 연대라는 3연대로 3탈의 문제의식을 사회연대적 대안으로 만들어 나가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돌봄 운동을 위한 '3탈 3연대 운동'을 구체적인 우리의 생활 살림 공간인 마을에서 만들고, '마당생태계'를 되살려 나가야 한다.
전통적인 '마당'은 사적 주거 공간(집)과 공적 이동 공간(길) 사이에 위치하는 중간 영역으로, 부담 없는 소통과 상호 관찰, 자발적 돌봄이 일어나는 핵심 공간 원리이다. 이 마당 원리를 확장하여 3단계 생태계로 재설계해야 한다.
• 미시 마당 (Micro-Madang, 내집) : 개별 주거 공간의 돌봄 환경화 단계이다. 문턱 제거, 안전바 설치 등 주거 개보수와 디지털 기반의 스마트 안심 장비를 연계하여 1인 가택 내부를 가장 안전한 돌봄의 출발지로 재구성한다
• 중시 마당 (Meso-Madang, 우리 동네 사랑방) : 도보 10~15분 거리 내에 위치한 동네 사랑방 영역이다. 마을 카페, 경로당, 빈집을 리모델링한 공유 주방, 마을 도서관 등이 포함되며, 고립된 개인들이 집 밖으로 나와 식사를 함께하고 안부를 물으며 관계망을 형성하는 거점으로 작동한다.
• 거시 마당 (Macro-Madang, 시·군·구 공공기관) : 지자체, 보건소, 종합병원, 복지관 등 전문 기관이 연계된 공적 지원 인프라이다. 미시·중시 마당에서 해결할 수 없는 고난도 의료, 장기 요양, 행정·법적 후견 서비스를 적시에 연결하는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수행한다.
# 지속가능한 돌봄 거버넌스와 재정·문화행정적 기반
단일 주체에 의존하는 돌봄 정책은 관료주의적 경직성이나 재정적 취약성으로 인해 한계에 봉착한다.
지속가능한 마을 돌봄 생태계를 위해 행정, 의회, 시민사회, 사회연대경제의 4대 축이 상호 결합하는 지속가능한 돌봄 거버넌스 구축이 필수적이다.
행정(지자체·보건소)은 위기 가구 공적 발굴과 보건·의료 자원을 지원하고, 지방의회는 지역 맞춤형 돌봄 조례 제정과 예산 심의를 통해 법적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시민사회(지역 교회·주민 단체)는 마을 거점 공간을 개방하고 돌봄 일꾼을 발굴·육성하며 복지 감시망 역할을 수행하고, 사회연대경제(사회적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는 방문 진료, 식사 지원, 케어안심주택 운영 등 고품질 돌봄 전문 서비스를 직접 생산하고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정부 보조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업 구조는 정권 교체나 예산 삭감 시 돌봄 서비스의 중단을 초래하기에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주민과 지역 주체가 토지 및 공간 자산을 공동으로 소유·운영하는 '시민자산화'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시민자산화 메커니즘은 주민·지역 교회·시민단체의 공동 출자를 통해 마을 공유 공간(마을 카페, 돌봄 센터 등)을 매입 및 자산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 사업을 운영하여 수익을 창출한 뒤, 발생한 수익을 다시 돌봄 사업에 재투자하고 돌봄 일꾼의 안정적 임금으로 지급하는 자립형 순환 구조를 만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대구 안심마을은 15개 이상의 협동조합과 복지법인이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마을 돌봄을 자체적으로 고도화했으며, 세종시 번암빛돌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은 도시재생 사업과 연계하여 공동체 돌봄 거점을 확보했다.
서울 강서구의 사회적협동조합 사람과 공간은 지역 내 다수 시민단체가 연대하여 25억 원 규모의 건물을 매입·자산화함으로써 임대료 상승 우려가 없는 지속가능한 마을 돌봄 공동체 거점을 신설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정서적 고립과 우울을 치유하는 '문화적 돌봄'(여행학교, 동네만화가, 글방 프로그램 등)은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정식 공공 돌봄 서비스로 제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개별 부처별로 파편화되어 있는 예산 구조를 해체하고 통합 지원하는 '부처 융합 예산' 편성이 필요하다.
즉, 보건복지부의 돌봄·보건 예산,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여가 예산, 고용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예산을 시군구 단위에서 하나의 '문화돌봄 통합기금'으로 패키지화하여 다각도로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 사회 동반자법과 생활 동반자법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돌봄 거버넌스 실천의 가장 큰 걸림돌과 문제점은 재정·문화,행정적 기반의 취약으로 일어나는 돌봄 서비스의 질적 저하와 양극화 이다.
이러한 재정 행정적 돌봄의 질의 저하와 양극화를 줄이고 돌봄의 질을 높이는데 가장 중요한 관건은 지역 공동체 사이에서 욕구를 밀착 파악하고 자원을 연계하는 '연계활동가(Social Link Worker)'의 육성과 배치이다.
통합돌봄시대의 마을 돌봄 일꾼들은 단순한 봉사자나 돌봄 수혜자가 아니라, 지역사회 내에서 돌봄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돌봄 생산자(Care Producer)'가 되어야 한다.
이제 마을의 돌봄 일꾼들은 지역 공동체 사이에서 욕구를 밀착 파악하고 자원을 연계하는 '연계활동가(Social Link Worker)로서 당당히 등장해야 한다.
이러한 연계활동의 리더로서 마을 돌봄일꾼의 육성되고 배치되어야 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마을 돌봄 일꾼들이 반드시 ‘사회 동반자법'이라는 제도적 대안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동반자법'과의 결합의 사례는 부산진구에서 추진된 고령장애인 통합돌봄 사업 '링크온(Link-On)'은 전문 링크워커를 투입하여 고립 대상자의 문화·정서 관계망을 확장함으로써 단순 생계 지원을 넘어선 보건적 연결을 입증했다.
또한 ‘사회 동반자법'과의 새로운 결합은 혼인과 혈연만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는 기존 가부장적 법제도를 1인 가구 및 비혈연 동거인의 상호 돌봄으로 넘어설수 있을뿐만 아니라, 입원 및 수술 시 보호자 서명 불가 • 주택 임차권 상속 배제 • 사망시 장례 권한 부재 등의 나 홀로 사회의 불안감도 넘어설수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성년이 된 두 사람이 합의에 따라 동거하며 상호 돌봄 관계를 형성할 경우 이를 법원에 신고해 법적 효력을 부여함으로써 국가의 막대한 예산 투입 없이도 자발적 상호 돌봄 관계망을 법적으로 보호하자는 것이다.
돌봄 마을 단위에서 돌봄 마을 일꾼들을 키워 그 돌봄 마을 일꾼들이 ‘사회 동반자법'과 '생활동반자법'을 결합한다면, 이러한 사회적 처방은 외로움•고립감•경증 우울을 겪는 대상자에게 약물이나 수술 대신 지역사회의 운동•문화예술•봉사•심리상담 모임을 연결해 비의료적으로 건강을 증진하는 보건·복지 융합 모델이 될수 있다.
이 모델의 핵심은 일차 의료기관(의사)과 지역 공동체 사이에서 욕구를 밀착 파악하고 자원을 연계하는 '연계활동가(Social Link Worker)'의 배치인데, 이때 지역사회 내에서 돌봄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돌봄 생산자(Care Producer)'로서의 마을일꾼들이 당당히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돌봄은 더 이상 가족만의 몫이 될수 없다.
혈연이 아니라 이웃이, '사회적 이모'와' 사회적 삼촌'이 서로를 돌보는 관계망, 그것이 이 시대의 사회적 자궁이다.
혼자 죽는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고도 큰 일은, 저마다의 마당을 하나씩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지자체 예산과 주민의 공동출자로, 한동네씩 차곡차곡 쌓아가는 정책이 지금 필요하다.
'돌봄 마을과 마당' 하나가 열리는 곳마다, 고독은 한사람씩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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