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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정암사, 다수의 명문 국내 최초 발견

기사승인 2013.07.11  18: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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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코리아저널/ 이우근 기자]정선군과 강원문화재단부설 강원문화재연구소는 정암사의 역사성을 검증하고 사역의 규모를 재검토하여 유적의 보존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2013년 5월 23일부터 문화재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통일신라~고려시대의 건물지 4동과 귀면기와, 연화문 막새기와 등 다수의 유물을 확인하였다.

▲ 정선 정암사 발굴조사
발굴조사는 정암사 건물지 1과 건물지 2, 3으로 구분하여 실시하였다. 건물지 1에서는 자연암반을 기초로 한 장대석을 우주로 하여 석재를 가로쌓기한 건물 기단의 독특한 양식을 확인하였다. 건물지 2, 3에서는 석축과 건물지가 확인되고 있으며, 세부적으로 계단지, 초석, 배수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또한, 건물지 2 옆에서 또 다른 건물지 4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조사된 건물지들은 계곡을 끼고 산지에 조성된 가람의 축조방법에 대한 정보와 정암사 사역이 지금보다 훨씬 넓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출토유물은 기와, 청자 등인데, 기와는 통일신라말기~고려초기로 보이는 연화문 수막새와 12세기로 추정되는 귀목문 암막새를 비롯한 기와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특히, 기와에서‘정암율사(淨嵓律舍)’‘사보조(思甫造)’‘교율(敎律)’‘근금(近金)’‘율정암사(律淨嵓寺)’‘춘월(春月)’등 다수의 명문이 국내 최초로 확인 되었다. 이 유물들은 삼국유사 및 정암사사적 등의 문헌기록에 등장하는 정암사 관계 기사의 내용을 검증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정암사와 수마노탑의 실체를 밝히는 단서가 된다. 청자는 소량 출토되었지만 음각과 압출양각 기법으로 성형되어 11~1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선 정암사 발굴조사를 통해 정암사는 고려초에도 존속된 당대 상당히 중요한 사찰이었음을 확인하였고 정암사의 불교사적 입지를 규명할 수 있는 명문기와 등이 출토되어 앞으로 정암사와 수마노탑과 사리신앙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기대된다. 2013년 6월 25일 정선군과 관련 전문가의 자문회의를 거친 결과 정선 정암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시굴조사한 건물지 2, 3, 4 구역 등은 향후 정비계획을 세우고 동시에 정밀조사를 실시하여 건물의 축조방식과 변화를 밝혀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정암사는 “신라 선덕여왕때 고승 자장율사가 당나라 산서성에 있는 청량산 운제사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정골사리(頂骨舍利), 치아, 불가사(佛袈裟), 패엽경(貝葉經) 등을 전수하여 귀국하였고, 동왕 14년에 금탑, 은탑, 수마노탑을 쌓고 그 중 수마노탑에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유물을 봉안하였다.”라고 알려져 있다.

이우근 기자 lwk132@naver.com

<저작권자 © 시사코리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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