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조선황실의 꽃, 이(李)의 부활을 꿈꾸며

기사승인 2013.12.31  11:56:21

공유
default_news_ad2
▲ 남경원 기자.
[시사코리아저널/ 대구=남경원 기자] 문장(紋章)은 국가나 일정한 단체 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지(標識)로 그 당시의 사회·문화·정치적 상황은 물론 시대적 정신이 담겨져있다.
현대에도 건물, 간판, 상표, 수표, 공식서류 등의 문장이 있는 것처럼, 문장(紋章)은 과거의 유물이나 회고의 대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도 살아서 그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상징이자 이념이다.
대한민국은 1963년 12월 10일의 규정에 따라 무궁화와 태극무늬로 구성된 문장(紋章)을 쓰고 있어 현재는 무궁화와 태극무늬를 어디서나 볼수 있다.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5개의 꽃잎 하나당 3개의 술이 놓여진 꽃의 문양, 이것이 바로 조선황실의 꽃인 오얏(李)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태조실록(太祖實錄)에는 조선을 뿌리가 깊고 근본이 튼튼한 오얏나무로 표현했다. 황실 가문의 성(姓)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식물로, 궁궐이나 사대부 집 후원에 흔히 심는 조경 과실수임이 춘향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이(李)도령을 낳기 전 태몽도 오얏나무꽃이라 하니 그 당시 가장 좋은 태몽으로 봤을 것이다.
오얏꽃이 무늬로 제작되어 사용된 것은 대한제국 이전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얏꽃무늬 관련 유물은 1885년에 경성전환국(京城典圜局)에서 찍어낸 화폐이다.
오얏꽃무늬에 대한 언급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대한제국기 이후이다. 1900년에 고종은 조서를 내려 훈장의 이름과 뜻을 밝히는 훈장조례를 반포해 이화대훈장(李花大勳章)이 등장한다.
또 덕수궁 석조전의 페디먼트, 창덕궁 인정전(仁政殿)의 용마루와 실내전등, 희정당(熙政堂)의 현관, 낙선재(樂善齋) 뒤뜰의 돌의자 등 건축물에서도 오얏꽃무늬를 볼 수 있다.
황실에서 사용하였던 가구들과 은합, 수저와 같은 기구들에도 오얏꽃무늬가 음각돼 있고 일본,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 수입한 대량 생산된 산업자기들에도 오얏꽃무늬가 찍혀 있는 경우가 많다.
1900년 당시 프랑스의 건축가 페레에 의해 지어진 대한제국관을 그린 엽서와 사진에서 대한제국관의 기둥 윗부분마다 오얏꽃 문양이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전의 왕실 문양으로 사용됐던 용이나 모란 등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문장과는 달리 오얏꽃무늬는 이씨(李氏) 왕가를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소재로, 독립국임을 알리고 외국의 내정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자 함을 대한제국의 시대적 배경을 통해 엿볼수 있다.
이처럼 황실문장으로서의 오얏꽃무늬는 조선 왕조를 직접적, 시각적으로 나타냄으로써 왕실의 권위를 드높이고 대한제국의 단결을 유도하는 매개체이자 민족의 정체성이다.
그러나 이후 오얏꽃은 무슨 연고인지 잊혀져 갔다.
대한제국의 국기 태극기는 대한민국까지 계승됐지만 대한제국의 꽃인 오얏꽃은 무궁화로 바뀌었다. 이름조차 수난을 당하고 있다. 오얏은 고어가 되어 현재는 자두라는 말을 쓴다. 조선 500년 역사와 대한제국의 권위이자 상징인 꽃이 국가문양에서 사라지고 왜 고어가 됐을까?
앞서 말했듯 오얏(李)이 조선황실의 꽃으로 불리는 이유는 황실 가문의 성(姓)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도선국사는 도선비기(道詵秘記)에 500년 뒤 오얏 성씨(李)를 가진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예언을 두려워한 왕은 한양에 오얏나무를 심었다가 일정기간이 지나면 베어버림을 반복함으로써 왕기(王氣)를 다스렸다고 한다.
그러한 핍박에도 그 후 나타난 500년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시대가 열렸다. 이성계는 환조 이자춘과 의혜왕후 최씨의 적자로 태어났는데 태어나기전 태몽이 범상치 않았다. 꿈 속 하늘에서 오색 구름을 타고 선녀가 내려와 이자춘에게 절하고 ‘천계에서 그대에게 내리는 것이니, 장차 이것을 동쪽 나라를 측량할 때 쓰라’며 침척(바느질에 사용하는 자)을 꺼내 바쳤다고 한다.
이(李)는 오얏나무라는 뜻도 있지만, 심부름꾼·사자 라는 뜻도 있다. 또 이(李)자는 나무목과 아들자의 조합으로 동쪽의 밝은 해를 상징한다고 한다. 과거 오얏나무를 베어 왕기를 다스린 것처럼 알수 없는 연고의 수난으로 격하되고 이름마저 잊혀지고 있다.
대외·내적으로 요동치는 이때, 문장 하나에도 권위와 상징을 부여해 자주국가를 꾀하고자 했던 과거 대한제국처럼 반드시 한다는 정신과 작은 것 하나라도 돕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손들을 모아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면에서 ‘동방의 빛 2014 대한민국’으로 다시금 태어나길 기대해 본다.

남경원 기자 skaruds@gmail.net

<저작권자 © 시사코리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set_hot_S1N19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